The Library of Eunsun Cho
趙殷淳 書齋
(3)
고향 떠나 40년





우리가 고향을 떠나 온지도 40년이 넘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를 때 그 이상한 심정 지금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희망, 그리움, 슬픔, 무서움 등이 섞인 흥분된 상태라 할까요. 고등학교 때 읽었던 Karl Busse의 시가 새삼스러웠습니다.



Über den Bergen, weit zu wandern,                  저 산 넘어 멀리 가면,

Sagen die Leute wohnt das Glück.                    행복이 있다네요.

Ach, und ich ging, im Schwarme der andern,   아, 나도 사람들 따라 갔다가,

Kam mit verweinten Augen zurück.                  눈물에 젖어 돌아왔지요.

Über den Bergen, weit, weit drüben,                 저 산 넘고 또 넘어 가면,

Sagen die Leute wohnt das Glück.                    행복이 있다네요.



그런데, 어느 사이에 세월은 흘러 가고 진정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어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衣不如新 人不如故(옷은 새 옷만 못 하고, 사람은 옛 친구만 못 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뭐니 뭐니 해도 동창들 만나는 것 같이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그 옛날 영어 교과서에 있던 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시 생각 나시는지요?



      The Arrow and the Song                                       화살과 노래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 쏘아 올리니,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땅에 떨어졌네, 내가 알수 없는 곳에;

For, so swiftly it flew, the sight               그 빠르게 날아 가는 화살을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내 눈이 따를 수 없었기에.



I breathed a song into the air,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불러 올리니,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땅에 떨어졌네, 내가 알수 없는 곳에;

For who has sight so keen and strong,      누가 그처럼 예리하고 강한 눈이 있어

That it can follow the flight of song?        날아 가는 노래를 따를 수 있으랴?



Long, long afterwards, in an oak               긴 세월 흐른 뒤, 어느 떡갈나무에서

I found the arrow, still unbroken;              그 화살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And the song, from beginning to end,       그리고 그 노래도, 온전한 그대로,

I found again in the heart of a friend.        한 친구 가슴 속에서 다시 찾았네.



그러나, 그리운 고향 생각 어찌 나지 않으리오. 修睦이 그 심정을 잘도 표현했습니다.



故國歸未得     그리운 고향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此日意何傷     오늘은 어찌 그리 마음 아픈지

獨坐水邊草    혼자서 물가 풀밭에 앉아 있으려니

水流春日長    물은 잘도 흐르고 봄날은 길기만 하네



내년에 일본에서 동창들이 모인다니 한국도 둘러와야지요

목차

제 3 장

고향떠나 40년

Dupuytren’s Contracture

기도
Dupuytren’s Contracture

孟子님이 말 하기를 “지금 無名指(ring finger)가 구부려저 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것이 아픔이나 일 하는데 지장이 없다 해도, 만일 그 무명지를 펴 줄 사람이 있다면 秦, 楚나라 길이라 할지라도 찾아 가는 것은 그 손가락이 남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남과 같지 않으면 싫어할 줄 알면서도 마음이 남과 같지 않으면 싫어할 줄 모르니 이것을 두고 輕重을 모른다고 하는 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더욱 나아가 “사람은 누구나 不忍人之心(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였으며 “이 측은(惻隱)해 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하지 않음을 브끄러워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惻隱之心 仁之端也(측은해 하는 마음은 仁의 실마리요)

羞惡之心 義之端也(不善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의 실마리요)

辭讓之心 禮之端也(사양하는 마음은 의 실마리요)

是非之心 智之端也(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의 실마리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마음의 四端(네가지 단서)이며 이는 육체의 四肢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仁義禮智는 밖에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데 다만 우리가 충분히 찾아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면 얻고 놓으면 잃는다(求則得之 舍則失之, Use it or lose it)” 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


제자 季路가 주검()을 물으니 孔子님 말이 “삶을 아직 알지 못 하는데 주검을 어찌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자님이 병에 들어 위중한 때가 있었습니다. 제자 子路가 공자를 위해 기도하기를 청했습니다.

공자: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느냐?”

자로: “네, 고대의 기도의 말은 ‘하늘과 땅의 신에게 비나이다’ 였습니다.”

공자: “그런 기도는 나도 오래전부터 해왔다.”



CBS 기자 Dan Rather가 Mother Theresa를 단독 회견한 기록이 있습니다.

Mother Theresa was once asked in an interview whether she prayed. “Oh, yes” she replied, “I pray all the time. I pray constantly.”

Rather: “What do you say to God when you pray?”

Theresa: “I don’t say anything, I just listen.”

Rather: “OK, then what does God say when you pray?”

Theresa: “HE doesn’t say anything, HE just listens also, and  if  you don’t know what that means, I can not explain it.”

이것을 바로 以心傳心이라 하겠지요.